TV만 틀면 저 사람 나오네라고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
특히 평일 아침과 퇴근시간을 책임지는 그분은 아니신가요.
그분은 바로 김재원 아나운서입니다.
그는 숱한 역경을 겪으면서 자기에 할 일은 성실히 하였고
남은 시간은 헌신하면서 살아온 보통 사람은 하지 못할 인생을 살았습니다
저는 감동을 받아서 제 블로그에 포스팅을 합니다.
그의 인생 이야기
김재원 아나운서 그는 우리나라 대표 프로그램인 아침마당과 6시 내 고향 MC를 주로 하는 아나운서입니다. 이 두 개의 프로그램은 우리나라 사람의 희로애락을 통해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사람에게 공감할 줄 알고 소통할 줄 아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 여야지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김재원 아나운서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런 프로그램에 이토록 잘 맞을까요 한번 알아볼게요.
성장기
그의 어린시절 어머니는 호텔에서 미용실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미용실에 불이 나면서 거기서 일하던 아는 미용실 누나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시고는 어머니는 큰 충격에 빠지셨고 이제껏 믿어왔던 불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전향을 하시는 계기가 됩니다. 엄청 열심히 종교생활을 해 오던 중 몸에 이상이 생기셨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니 담석증으로 진단을 받으시게 됩니다.
담석증 치료를 하지만 몸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다시 진료를 받아보니 간암으로 진단되었고 김재원 씨가 중1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됩니다.
이떄 한부모 가정의 서러움을 많이 느꼈다고 합니다. 특히 학창 시절 매년 진급 시즌이 오면 반장 엄마가 학부모 모임을 만들어 집에 전화할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엄마가 없는 김재원 씨에게 엄마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거나 상처 주는 말을 할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사람 마음을 헤아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와 단둘이 살게 되고 그때부터 아버지가 어머니 역활까지 하게 됩니다. 생전 하지 않던 요리나 재원 씨 도시락 등을 투박하고 서툴지만 항상 싸주셨다고 합니다. 그 도시락에는 파와 소시지 그리고 계란말이가 있었는데요. 솔직히 맨날 같은 반찬으로 싸주셔서 질리기도 하고 싫기도 했지만 아버지에게 그게 최선이야라고 생각하며 싫은 내색 없이 먹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투병생활
아버지는 정말 재원씨를 헌신적으로 기르셨습니다. 사업이 망해서 작은 집으로 이사 가는 처지에도 어머니와의 약속이라며 그를 유학까지 보내게 됩니다. 유학을 갈 시기에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던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여자 친구와 유학생활을 하는 도중에도 연락을 주고받다가 방학을 맞아 결혼을 하게 됩니다.
유학생활과 신혼생활을 동시에 하고 있던 중 새벽2시 쯤에 전화가 오게 되는데 그 전화는 아버지셨고 아버지는 내가 많이 아프다고 하면서 네가 한국에 들어와서 장례 치르고 다시 가야겠다는 전화였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는 뇌경색이 와서 병원에 입원 중이셨고 이 소식을 듣고 신혼 2개월 되던 김재원 씨는 한국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밤 낮으로 아버지를 간호하고 지내던 중 장인 장모께서는 자신이 아버지를 간호할 테니 유학생활을 마무리하고 오라고 하셨지만 그는 마음을 접고 간호에 전념합니다. 그러던 중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아나운서 모집공고를 TV를 통해 보게 되고 본격적으로 준비를 하게 됩니다.
늦은 밤 병원 복도에 있는 벤치에 앉아 공부를 하여 2개월만인 1995년 아나운서가 되었습니다. 아나운서가 되고 나서 발령이 난 곳은 춘천이였습니다. 김재원 씨는 춘천지국에서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아버지가 계신 서울로 출퇴근을 하며 아버지를 돌봤습니다. 출근 준비도 병원에서 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김재원 씨는 방송을 하면 꼭 마무리 인사를 이렇게 했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자기 방송을 보는 아픈 아버지와 세상의 아픈 아버지들을 위해 자기만의 인사법을 만들어서 안부를 묻고 있었던 겁니다. 6년을 일을 하는 와중에 아버지를 간호하다 보니 안좋은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훗날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후회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버지로서 김재원씨, 그리고 강사로서 김재원씨
김재원 씨는 아버지 역할이 자기가 이제껏 맡았던 역할 중에 제일 어려운 역할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와의 소통이 가장 어렵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청소년 시기의 자식들은 말을 안 하게끔 유전자가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자식과 무리하게 대화를 하다 보면 갈등이 생긴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대화를 무리하게 하기보단 대화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뉘앙스를 항상 자식에게 표현을 하고 자식이 대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이 들면 그때 대화를 한다고 합니다. 대화를 하기 싫다고 생각될 때는 아이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까지 시간을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통 강의를 여러 사람한테 할 때에는 소 그림과 통 그림을 사람에게 보여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무슨 연관이 있지 하면서 사람들이 웃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김재원 씨는 소와 통이 무슨 연관이 있겠느냐고 소통이란 게 이렇게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말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통 안에 여물을 넣어서 소에게 주면 그것은 여물통이 되면서 소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고 합니다.
소통도 사람에게 소의 여물통과 같이 그 사람의 연결고리를 찾아 나가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라고 하면서 소통의 의미를 굉장히 재밌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뭔가 따뜻한 아버지일 거 같고 재밌는 강사님일 거 같은 김재원 아나운서를 앞으로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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